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콜로라도 로키스/역사 (문단 편집) == 창단 초기, 화끈한 타격의 팀 == [[파일:Ci7J91TWkAIaxss.jpg|width=70%]] [* 1990년대 중반 콜로라도 타선을 이끌었던 일명 블레이크 가의 폭격기(The Blake Street Bombers). 상단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단테 비솃, 래리 워커, 안드레스 갈라라가, 비니 카스티야.] 창단 직후 1993년은 NL 서부 6위[* 당시에는 양대리그 동서 2개 지구 체제였다. 현재처럼 3개 지구 분할은 1994 시즌부터였다.], 1994년은 NL 서부 3위를 기록하는 등, 신생팀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, 1992년의 [[단테 비솃]], 비니 카스티야, 안드레스 갈라라가, 에릭 영 시니어, [[조 지라디]][* 카스티야와 지라디, 영은 확장 드래프트로 받아온 선수이고, 비솃은 트레이드로 영입했다.], 1993년의 엘리스 벅스, 그리고 1995년 [[래리 워커]]같은 FA 영입과 홈 구장 [[쿠어스 필드]]를 새로 건립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로 1995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와일드 카드를 따내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. 그러나 [[애틀란타 브레이브스]]에 1승 3패로 패하며 첫 플레이오프 진출에 만족해야했다. 1996년에는 [[로스앤젤레스 다저스]]와 [[샌디에이고 파드리스]]에 밀려 1994년과 같은 3위를 마크했다. 1997년에는 [[토드 헬튼]]이 합세해 장타력에 정교함을 더했지만 여전히 팀은 3위였다. 이 시기는 메이저리그의 약물시대로서 타고투저가 극심했고, 투수들의 무덤인 홈구장 쿠어스필드의 효과가 겹쳐져서, 로키스는 타고투저의 대표적인 팀이 되었다. 1995~1997 시즌 3시즌 동안 로키스는 최다득점과 최다실점 모두 여유롭게 1위를 했다. 화끈한 공격야구에 관중들은 열광했지만 팀의 한계점과 문제점은 분명했다. 그 분명한 문제점은 바로 투수력과 원정경기 타력. 이을 보완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한다. 1998 시즌을 앞두고 로키스는 FA가 된 노장 안드레스 갈라라가 대신 유망주 [[토드 헬튼]]에게 1루수와 4번타자 자리를 한편, 에릭 영 시니어를 주고 다저스의 영건들 중 하나인 페드로 아스타시오를 받아온다. 그리고 휴스턴에서 1997 시즌 19승 7패 2.57의 환상적인 성적을 거둔 커브볼러 [[데릴 카일]]을 FA로 잡는다. 그 결과 1998년에는 실점 1위를 벗어났지만 이번엔 믿었던 타력이 부진하면서 서부지구 5개 팀 중 4위, 99년에는 대망의 1000실점을 돌파하면서 창단 첫 지구 꼴찌를 한다. 2년간 에이스 대럴 카일이 올린 성적은 2년간 21승 30패 5.84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